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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orean Crit Care Nurs > Volume 16(1); 2023 > Article
환자 가족의 중환자실 일기 체험

ABSTRACT

Purpose

Intensive care unit (ICU) diaries have been implemented across the international ICU community. This study aimed to comprehend the meaning and nature of the lived experience of patients’ families using the ICU diary in Korea.

Methods

This qualitative study adopted van Manen's hermeneutic phenomenology. The participants comprised eight women and two men who were the family members of patients in the ICU for more than three days. Data were collected using in-depth interviews and observation from July 2018 to January 2019.

Results

Patients’ families who experienced the ICU diary recognized it with six beings according to time: a good idea, forgotten stuff, burdensome work, touching service, my stuff, and a thing in the memory. The ICU diary had three essential meanings for the families: communication, solace and hope, and a record of life. These findings were rearranged according to van Manen's fundamental existential, and the lived things and lived others were remarkably confirmed.

Conclusion

Patients’ families experienced various ICU diary forms over time and recognized an ICU diary as a means of communication. Therefore, the ICU diary is expected to be used as an intervention between families and healthcare providers in the ICU to support mutual communication.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가족은 기계 장치 등의 낯선 환경, 환자 상태에 대한 염려, 의료진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등으로 인해 중압감을 느끼게 되고, 환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슬픔 속에서 직접 돌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다[1]. 그리고 위기에 당면하여 환경적 변화나 요구에 대해 자원이나 인지가 미치지 못할 때 가족에게는 부적응과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다[2], 또한 중환자의 가족은 예고 없는 입원에 대한 충격, 불확실한 진단, 예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치료나 처치에 대한 결정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가족의 어려움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가족과 의료인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3].
근래 국내 중환자실에서는 ‘중환자실 일기’가 쓰이고 있다. 중환자실 일기는 환자를 중심으로 중환자실 치료 과정 속에서 겪는 매일의 내용들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함께 작성하는 것이다. 중환자실 일기는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스칸디나비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치료 목적보다 간호사의 경험적 접근으로서 시작되어 상향식 착수(bottom-up initiative)에 의해 퍼져 나갔는데, 이러한 실용적인 관행은 점차 학문적 조사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다[46]. 중환자실 일기는 환자와 가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7], 가족 참여와 권한 위임(engagement and empowerment)의 방법으로 추천되고 있고[8,9], 국내에서는 2014년 S병원에서 처음 시작하여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의 질병 상태, 가족의 상황, 자원 체계, 대처 정도가 각자 다른 것과 같이 그들의 가족이 나타내는 스트레스, 불안, 암담함 등의 정서 반응도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중환자실 일기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지는 각 환자와 가족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체험은 양적인 측정이나 비교를 통해서는 그 사태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중환자실 일기가 외국에서 시작되어 전해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중환자실 일기가 효과적이고 개별적인 간호 중재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중환자실 일기가 그 가족에게 어떻게 체험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나 국내에는 방법론을 적용한 중환자실 입원일지 개발 연구[10]가 있는 정도일 뿐으로 관련 연구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Edmund Husserl에 의해 창시된 현상학은 체험의 본질을 텍스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그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11,12]. 현상학은 “사태 그 자체로(to the things themselves)”라는 모토를 기초로 Heidegger의 존재론적 현상학, Sartre의 실존적 현상학, Merleau-Ponty의 지각의 현상학, Ricoeur의 해석학적 현상학, Schutz를 거치면서 발전되고 심화되면서 대표적인 현대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13]. 현상학은 실증주의나 과학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인간의 체험 세계를 편견없이 통찰하고 기술하도록 하는데, 가설이나 제한된 설계가 아닌 생활세계 내 인간을 중심으로 그 체험된 사태 자체를 주목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학적 연구 접근은 간호 영역에서 전인적 돌봄의 실천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14].
이에 본 연구는 현상학적 질적 연구 접근으로 가족들의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체험, 즉 ‘가족이 중환자실 일기를 쓴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중환자 간호영역에서의 환자-가족 중심 간호의 기초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가족들의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체험을 탐색하고 그 의미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환자 가족의 중환자실 일기 이용 체험에서 드러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둘째, 중환자 가족이 체험한 중환자실 일기 체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연구 방법

1. 연구 설계

본 연구는 중환자실 일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그들의 중환자실 일기 이용 체험의 본질과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현상학적 질적 연구이다.
현상(phenomenon)은 ‘의식에 나타난 것’을 말하며, 현상학은 이 ‘현상’을 탐구의 출발점으로 하여 탐구 과정에서 스스로 검증하지 않은 독단적 지식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15]. 현상학에서 말하는 본질은 절대적 진리로서 간주되는 본질과는 그 의미적 차이가 있으며 사태 자체에서 드러나는 ‘그것이 없이는 바로 이 사물과 같은 것을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필연적 일반적 형식’을 일컫는다[16]. 현상학은 ‘앎의 근원은 우리의 경험 속 현상에 있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순수의식의 지향성과 주관성을 중요시하였고 학문적 통찰과 논증에 있어 사태 자체의 고유성에 충실하기를 강조하였으며 사회적 가치체계에 대한 자연적 태도를 경계하여 기존의 통념과 이론들에 대하여 사력을 다해 자유를 추구하도록 하였다[17]. 이러한 철학을 배경으로 둔 현상학적 연구방법은 귀납적 방법으로 추론하여 일반화하는 과정이 아니며 순수의식 속에 드러난 체험들을 그 자체로 환원하여 기술함으로써 생활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하는 과정이다[16]. 현상학적 연구방법은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인간의 경험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Giorgi를 중심으로 내용분석을 강조하는 기술적 현상학이, 교육학 분야에서는 van Manen을 중심으로 연구자의 존재론적 개입을 중시하는 해석학적 현상학이 대표적이다. van Manen은 체험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적 원리로 연구자의 태도 변경, 현상학적 문제 의식의 개발, 다양한 유형의 자료 수집, 체험에의 초대로서의 일화, 해석학적 순환과 글쓰기를 방법적 원리로 강조하고 있다[18,19]. 본 연구는 이런 van Manen의 해석학적 현상학 접근을 참고하여 진행되었다.

1. 체험의 본질을 향한 집중: 현상에 대한 지향

Husserl의 지향성의 원리에 의해 연구자의 존재는 주제와 관련이 되어 연구의 동력을 제공한다[18]. 본 연구의 연구자들은 현상학적 질적연구 방법론 워크숍과 강의를 통해 면담 기술 및 분석 방법과 질적 연구를 위한 글쓰기에 대한 심층 훈련을 받고 연구윤리교육을 이수하였다. 연구자는 중환자실 간호사이기에 ‘환자와 가족이 어떻게 중환자실의 치료를 잘 극복하는지, 그 속에서 간호사는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일상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중환자실 일기가 과연 효과적일까? 하는 반성적 물음을 시작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간호사로의 입장이 가장 먼저 괄호 치기(bracketing)할 것으로 고려되었다. 간호사들이 노력한 결과인 중환자실 일기에 대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은 연구에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면만 보거나 엉뚱한 내용을 확대 해석하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선행연구의 검토 내용을 포함한 지식과 가정들을 판단 중지(epoche) 했는데 현상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연구자에게 내재된 기존의 지식까지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연구자는 선 이해의 내용을 미리 규명하고 경계함으로써 탐구 현상과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중환자실 일기를 작성할 때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일 것이다’, ‘중환자실 일기는 가족과 의료진의 유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환자실 일기를 쓰는 가족은 중환자실을 떠난 후에 추억처럼 활용할 것이다’였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발견되는 추측이나 관습들도 연구자의 알아차림과 동시에 판단 중지 하였으며, 보이지 않는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에 주의하였다. 연구자는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가족의 체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고 듣고자 하였다.

2. 연구 참여자

연구 참여자는 2018년 7월 21일부터 2019년 1월 27일 사이에 서울시에 위치한 1500병상 이상의 일개 상급종합병원 외과 중환자실에서 3일 이상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들로서 특별한 제외 기준 없이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중환자실 일기를 이용하고 연구 참여에 동의한 경우는 모두 대상으로 하였다. 연구 참여자 수는 일반적으로 연구 결과의 포화를 고려하여 정한 총 10명이 참여하였으며, 연구 도중 환자가 사망한 참여자 1명을 포함한 10명의 면담 자료를 최종 분석하였다.

3. 자료 수집: 경험을 겪은 대로 탐구하기

자료수집은 2018년 7월 21일부터 2019년 1월 27일까지 6개월간 진행되었다. 중환자실 일기는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책자가 이용되었고, 입실 3일째에 담당 간호사는 가족에게 일기를 소개하면서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다. 환자, 가족, 의료진에 의해 중환자실 일기가 가능한 매일 작성되었고 퇴실 시점에 환자와 가족에게 전달되었다. 사진촬영에 동의한 경우에는 중환자실 치료 중인 환자와 가족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찍혀 중환자실 일기 책자에 부착되었다.
연구자는 해당 중환자실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본 연구에 대해 알리고, 연구 진행에 따라 기존 업무가 변경되는 것은 없으며, 중환자실 일기에 대해 기존의 양식과 방법이 그대로 이행되도록 하였다. 작성된 중환자실 일기는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 정리되었는데, 작성된 기간은 환자 상태에 따라 2일부터 70일로 다양하였다. 담당간호사가 중환자실 일기를 소개하는 시점부터 작성 중, 퇴실 이후 가족의 반응에 대한 관찰과 면담이 연구자에 의해 진행되었고 가족과 의료진의 표정, 행동, 언어, 전체적인 분위기나 옷차림 등의 상황적 특성도 기록되었다. 면담은 가족이 환자를 두고 멀리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병실이나 병실에서 가까운 가족 면담실 등의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루어졌고, 내용은 녹취되었다. 중환자실 일기 이용 시기에 따라 각 가족마다 최소 2회 이상 면담이 진행되었다.
면담은 연구자 1명이 참여자의 중환자실 일기 이용 시기에 따라 구성된 반 구조화된 질문을 이용하여 진행하였다(Table 1). 주요 질문은 “중환자실 일기를 어떻게 체험했습니까?”와 “본인에게 중환자실 일기가 어떠했습니까?”였다. 면담 시에는 참여자가 사태로 돌아가 환기될 수 있는 구체적 질문들을 추가하였는데, “당시로 돌아가서 그 망설여지는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게 되었나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막상 어떤 느낌이셨나요?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이 있나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되었을까요?” 등의 것이다. 면담은 문답 형식이 아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대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연구자는 면담 전후로 주요 자료로서 참여자의 일기를 확인하였고 참여자가 일기를 이용하는 시간, 표정, 제스처 등에 대한 관찰일지를 작성하여 기록하였다. 면담 내용은 생생한 자료로 남기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전사하였고 간단한 대화 등도 메모하였으며, 수집된 자료는 수시로 부분과 전체를 반복하여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면담을 진행하였다.
Table 1.
Interview Questions
Categories Questions
Questions at the beginning of using the ICU diary 1. What is the patient's situation? What is your experience with the ICU?
2. Going back to when you were first introduced to the ICU diary, how was it?
3. Were there any hesitations about the decision to use the ICU diary?
4. How would you feel if you had a positive thought?
5. How would you feel if you were in trouble?
6. How did you feel while using it after deciding to use it?
7. What would the ICU diary be like?
Questions while using the ICU diary 1. Did you write in your ICU diary? What did you write?
2. How about keeping the ICU diary?
3. What did the ICU diary mean to you at the time?
4. Do you have an anecdote related to the ICU diary?
5. What are the good and bad things about the ICU diary?
6. Do you think the ICU diary has an impact on you?
7. The intensive care unit staff is filling it out. How do you feel about reading or writing a diary?
Questions after using the ICU diary 1. In a general ward, do you have the ICU diary? Do you read it occasionally?
2. Does the diary make you uncomfortable or good? How do you feel about your diary?
3. Would you like to make a recommendation? Is there anything to improve?
4. Do you think the ICU diary is meaningful to you? Did anything change right after you moved out?
5. Can you describe the ICU diary in words that you are feeling?

ICU=Intensive care unit

van Manen의 현상학적 접근에서는 어원이나 비유, 관용구, 문학작품, 그림, 영화 등 모든 것이 연구의 자료로 쓰일 수 있으며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적 자료일수록 바람직하다[32]. 본 연구에서도 어원을 포함하여 주제 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관용어구, 문학, 예술작품들을 관심을 가지고 검토하였다. 그러나 어원의 경우 한자어를 풀어내는 정도에 그칠 뿐 해석학적 현상으로 의미 있는 통찰을 주지 못하였고 기타 경험적 자료들은 가족의 처지 등의 맥락적 현상과 관련된 자료들 만이 수집되어 중환자실 일기와 직접 관련된 결과로 제시되기는 어려웠다.

4. 자료 분석 방법: 해석학적이고 현상학적인 반성과 글쓰기

연구가 주제에 대해 궁극적으로 기술하려는 것은 체험 그 자체이며 추상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12]. 연구자들은 참여자 별로 자료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료가 수집된 당시의 상황과 일기의 내용, 면담 내용을 함께 검토하였고 특이한 경험 현상이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이후 수집된 전체 자료를 의미 단락으로 구분하고 잠정적으로 해석하여 주제 그룹으로 묶었다. 묶인 주제에 따라 텍스트를 통합하여 글쓰기와 고쳐 쓰기를 진행하였고 이 과정 속에서 주제 그룹의 해체와 재구성이 반복되었다. 의미를 세분하거나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자료를 다시 확인하였으며 드러난 현상이 개별적인 사례의 고유함이 유지되고 있으면서도 일기 체험에 있어 공통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인지를 사례 전체에서 재검토하였다. 글쓰기는 가능한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본래의 발생적 연원에 가깝도록 하고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가족의 체험이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드러나도록 고려하였다. 자료 수집과 글쓰기는 처음의 인식이 새로운 것으로 변경되고 또 변경된 인식이 다른 현상을 확인하게 되면서 바뀌는 것을 반복하는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 과정이었다.
van Manen은 분석과 해석의 과정에 도움을 주는 실존체로서 체험적 신체(lived body), 체험적 공간 (lived space), 체험적 시간(lived time), 체험적 관계(lived others) 등을 소개했으며, 학자들이 이들 실존체를 해석적 안내자로 사용함에 있어 기계적으로 형식을 따르는 유혹을 경계하는 연구자의 자세를 당부하였다[12]. 본 연구는 주제 범주를 다양하게 묶고 해체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실존체를 해석적 안내자로 참고하였고 체험된 사물(lived things), 체험된 관계(lived others)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5. 연구의 윤리적 고려와 엄격성

본 연구는 연구대상병원 기관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IRB No. 2018-07-061)을 받고 진행하였으며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참여자는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고, 면담 녹취 파일은 필사 과정을 거친 후 폐기하였다. 자료 중 개인에 대한 식별이 가능한 내용이나 사진 등의 민감할 수 있는 개인 정보는 직접적인 노출이 되지 않도록 가림 처리하였다.
본 연구는 Lincoln과 Guba [20]의 엄밀성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연구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신빙성(credibility)을 위해 연구자 자신의 준비를 철저히 하였고 면담 시에는 참여자가 솔직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진실된 체험 자료를 수집하도록 하였다. 수집된 자료의 분석과 해석에 대한 신뢰성과 보편성, 타당성을 위해 연구자들 간 검토를 거쳤으며, 연구 참여자에게 기록된 내용과 분석 내용을 전달하여 자신의 경험에 일치하는지 확인하였다. 전용 가능성(transferability)을 고려하여 일지, 관찰, 면담, 중환자실 일기 등의 다각도의 자료원을 수집하였고 자료의 포화 여부를 점검하였다. 의존성(dependability)을 위해 연구 기간 동안 연구방법과 분석에 충실하였으며, 다른 연구자들과 진행 과정을 자세히 공유하고 주의를 끄는 현상에 대해 서로 논의하면서 해석학적 순환과정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선이해와 가정을 경계하고 판단중지를 하여 확증성(confirmability)을 높이도록 도모하였다. 최종 분석된 결과는 중환자실 일기를 경험한 간호관리자와 간호사, 외부 전문가와 연구 참여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정이 요청된 사항을 최종적으로 연구자가 판단하여 분석에 반영하였다.

연구 결과

1. 연구 참여자의 일반적 특성

연구 참여자 10명의 일반적 특성을 살펴보면, 성별은 남자 2명, 여자 8명이었고 연령은 24~65세에 분포하였으며 환자와의 관계는 배우자 2명, 아들 2명, 딸 4명, 형제 1명, 부모 1명이었다(Table 2). 환자의 진단명은 다발성 외상, 암, 만성질환의 악화 등이었으며, 중환자실 재실 기간은 5~73일이었다. 대부분의 참여자가 중환자실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처음이었으나, 여러 차례 입원을 하거나 중환자실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Table 2.
Characteristics of the Participants (N=10)
Name Gender Age (year) Relation Diagnosis of patient Length of stay in the ICU (day)
Participant 1 Female 63 Spouse Aortic aneurysm 21
Participant 2 Female 62 Mother Multiple trauma 15
Participant 3 Male 43 Son Rectal cancer 73
Participant 4 Female 24 Daughter Multiple trauma 19
Participant 5 Female 38 Sister Pancreatitis 66
Participant 6 Female 55 Daughter Rectal cancer 73
Participant 7 Male 41 Son Autoimmune cholangitis 9
Participant 8 Female 48 Daughter Bile duct cancer 22
Participant 9 Female 65 Spouse Perforation of intestine 5
Participant 10 Female 50 Daughter Gastric cancer 6

ICU=Intensive care unit

참여자 1(여, 63세)은 대동맥 수술 후 재발된 출혈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배우자이다. 작은 체구에 싹싹하며 다부진 인상으로 환자가 섬망이 있던 시기에는 환자가 찾는 모친이 되었고, 평소에는 환자를 왕으로 모시는 역할극을 하며 환자에게 헌신하였다. 입원과 중환자실 치료 경험이 많아 면회 규칙이나 병원의 생리에 매우 익숙하였는데, 어떤 상황이든 환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16일간 일기를 작성하였다.
참여자 2(여, 63세)는 해외 여행 중에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였다. 아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면서 안면과 사지의 다발성 골절을 입었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있었다. 주보호자 부재로 잠시 보호자로 있던 환자의 고모가 중환자실 일기에 동의를 해 놓은 상태에서 일기를 쓰게 되었다. 참여자 2는 모든 것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는데, 환자의 상태가 하루하루 좋아지면서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일기는 7일간 작성되었다.
참여자 3(남, 43세)은 환자의 유일한 아들이다. 아버지와는 가까이 살면서 늘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아버지를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기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면회를 하였으며, 면회시간이면 침상은 가족들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주보호자가 변경되고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중환자실 일기는 초기 며칠 간 이용하였다.
참여자 4(여, 24세)는 환자의 딸이다. 참여자 4의 아버지는 뇌출혈과 다발성 골절을 입었고 초기 의식 저하 여부 감시를 위해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다. 주보호자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중환자실 일기를 썼는데 일기 첫 장에 간단한 그림으로 자유롭게 가족을 표현하였다. 일기는 4일차 정도에 쓰기 시작하였고 장염으로 면회를 일정기간 못 오게 되면서 직접 쓴 일기는 전체 작성 기간 14일 중 2일에 불과하였다.
참여자 5(여, 38세)는 급성 췌장염으로 3달 이상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있는 남동생을 보기 위해 일주일에 2~3일간 병원에 왔는데, 고생하시는 주보호자인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중환자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연히 일기를 보고 쓰게 되었다.참여자 6(여, 55세)은 아버지가 장폐색과 동반된 패혈증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동안 주 보호자로 일기를 작성하였다. 50대 초반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차림이나 동작이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붙이는 속눈썹을 하고 있다. 면회 시간이면 환자를 보고 활짝 웃으며 들어와 손발을 주무르고, 일부러 수다스럽게 말하고, 환자의 반응을 요구하였는데, 언제 어느 자리에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전체 연구 참여자 중 가장 길게 일기를 썼다.
참여자 7(남, 41세)은 아버지가 복부 수술 후 합병증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며 말투와 행동도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하루도 병원을 떠나지 않고 간병에 지극하였는데, 말없이 병실과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 보기 드물게 묵직한 효심을 보였다. 중환자실 일기는 4일간 작성되었다.
참여자8(여, 48세)은 어머니가 담도암으로 수술 후 회복 중에 합병증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다. 참여자8의 어머니는 5번이나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중환자실 일기를 이용한 기간은 18일이었고, 주로 읽는 편이었다.
참여자 9(여, 65세)의 배우자는 항암 치료 중 소장천공으로 수술을 받았다. 참여자 9는 초기 패혈증 상태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중환자실 일기 안내를 받았는데,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안정되었고 그 다음날 병실로 이동하였다. 중환자실 일기는 2일간 작성되었는데, 면회가 끝날 때 직접 일기를 찾고 작성한 후 면회를 마치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자 10(여, 50세)은 친어머니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참여자 10의 어머니는 올해 80세로 위암수술 후 혈관 폐색이 발생하여 3일간 매일 연이어 수술과 시술을 받았다. 다행히 응급 조치와 시술이 적시에 이루어져 큰 합병증 없이 회복을 하였다. 참여자 10은 직장을 다니면서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고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덜렁덜렁”하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중환자실 일기는 3일간 작성되었다.

2. 중환자실 일기 체험 과정

가족이 체험한 중환자실 일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섯 가지의 의미 구조로 정리되었다.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좋은 생각’으로 받아들였는데, 일정 시간 동안 중환자실 일기는 그들의 관심 밖에 있는 ‘없는 물건’이었다. 의료진이 작성한 메시지를 처음으로 읽게 되었을 때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감동적인 서비스’로 느꼈지만 막상 본인의 작성을 앞두고 중환자실 일기는 ‘부담스러운 일거리’가 되었다. 사용이 익숙해진 후에는 중환자실 일기는 가족에게 습관처럼 찾게 되는 ‘내 물건’으로, 일반 병실로 전동 후 가족에게 일기는 ‘기억의 물건’으로 남았다(Table 3). 중환자실 일기를 쓰는 참여자의 상황은 각각 다양했지만, 관찰과 면담이 반복되면서 시간에 따른 가족의 체험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able 3.
Meaning Structure and Interpretive Phenomenon of Family's Lived Experiences with the ICU Diary
Fundamental existentials Theme Key words
Experience with the ICU diary (Lived things) A good idea To help care
To give me the information I want
To leave words that are difficult to say in that situation
Forgotten stuff I can't think of not realizing the need
I didn't see it in the nursing area
Touching service Paid special attention to
It's inspiring
Burdensome work What do you mean to describe the pain of creation
I will write
My stuff Habitually, depending on the mood of the day
Diary first
It's sad when it's not written
When I look good, I think it will be better if I write it
Useless, when my heart aches, when there is a conflict
A thing in the memory When I go home, to show ‘it was like this’, to talk about it
Not after thinking, but as I organize my luggage
My father is great, and the medical staff are grateful
Meaning of the ICU diary (Lived others) Communication Delivered so the patient can see everything
Relaxing in a state of not being able to understand half
Don't keep asking
Scratching the itch
Even if we don't meet face to face, even if the time doesn't match
Solace and hope It really helped me
I knew the medics had a caring heart
A word of kindness is the difference between heaven and earth
A record of life Love and gratitude to the patient
Hard work while caring
Heartbreaking despair and hope
Gratitude and trust in medical staff

ICU=Intensive care unit

1) 주제 1. 좋은 생각

참여자들은 처음 소개받을 당시를 회상하면서 일기에 대해 공통적으로 “좋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간호를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기 위해서”였고, 또 “그 상황에서 환자에게 대놓고 말로 하기 어려운 내용을 남길 수 있고”,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서”였다.
“좋았어요! ‘아, 이거 관심이 많구나.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이 사람에 대해 좀 아실려고 그러시구나. 우리 아저씨에 대해서 알고 대처를 하실라고 그러는구나’ 그랬죠”(참여자 1)
“편한대로 하시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일단을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참여자 4)
면담이 진행될수록 가족들의 좋았다는 반응을 매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처음 중환자실 일기를 소개할 당시 그들의 외형적으로 보이는 무덤덤하거나 긴장된 모습과는 대조되는 부분이었다.

2) 주제 2. 없는 물건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 동의란에 서명을 하였고 환자를 소개하는 페이지의 내용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대부분의 가족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짧은 면회시간을 기다려 들어온 가족에게 일기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가족은 “생각이 안 나서”, “필요성 자체를 그렇게 평상시에 인지하지 못해서” 일기를 보지 못했다. 작성 초반의 중환자실 일기는 의료진이 작성한 내용만 남게 되기 쉬웠다.
“아빠의 상태에 너무 집중하고 이러다 보니까 일기에 포커스가 별로 가질 못했던 것 같아요. (중략) 들어가면 이제 의사선생님들 회진 돌고 이러면 그때 물어볼 거 생각하고 계속 그러고 있다 보니까. (중략) 그때 한번 인지를 주셔서, ‘아, 이러는 거구나’ 그 때 알았어요.”(참여자 4)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가족이 일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일기의 위치였다. 참여자 5는 일기가 환자의 공간이 아닌 의료진의 공간에 있어 가족이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는데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작성하는 것이다 보니 담당간호사가 일기를 작성한 후 자신의 업무 테이블에 두기가 쉬웠던 것이다.
“(간호사 업무테이블을 보며)여기는 선생님 구역이니까(웃음). 쳐다보고 그러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잘 관여를 안 하고 완전 못 보니까.”(참여자 5)

3) 주제 3. 감동적인 서비스

담당 간호사가 작성 권유를 해서야 가족은 동의를 위한 서명을 한 후 처음으로 일기를 펼치게 되었다. 먼저 쓰여진 손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환자에게 보내는 의료진의 메시지였다. 환자에게 “각별히 신경을 쓴” 그 글은 “굉장히 좋았고”, 가족은 감동했다.
“딱 보고 감동이었죠. 이렇게 신경을 써 주셨구나.”(참여자 1)
그러나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간호사가 자발적으로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분명 부담이 될 일”로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친절을 체계적으로 갖춘” 수단으로 평가하였다.
“솔직히 간호사들은 써라 그러면 힘들죠. 요즘 어린이집 가면 알림장 같은 거 쓰지 않습니까. 실질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죠. 솔직히 간호하랴~ 바꾸랴~ 뭐 이거 기저귀 이런 거 하랴. 근데 그거까지 쓸라 하는 것은, 그것은 무리여.”(참여자 3)
중환자실 일기는 가족에게 유아 보육시설의 알림장과 비교되었는데 실제 기능과 구조에 있어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알림장은 교사-부모간 신뢰 형성, 업무의 자원으로 활용, 부모 교육과 육아 지원의 장이라는 순기능을 가진다[21]. 알림장이 유아가 잘 성장하도록 돕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이 중환자실 일기는 환자와 가족의 회복과 적응을 돕기를 기대한다. 알림장은 유아-보호자-보육교사를 주체로, 중환자실 일기는 환자-보호자-의료진을 주체로 하는 삼각의 구조를 가지면서 각 주체 간의 소통을 보조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육아 과정에서 사용되는 알림장과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있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중환자실 일기는 그 상황적 차이가 있고, 알림장은 주로 부모와 교사의 소통수단이지만, 중환자실 일기는 환자까지 소통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4) 주제 4. 부담스러운 일거리

일기를 읽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처음 작성을 시도한 가족은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부담스러웠다. 간혹 “괜히” 실수로 남지 않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걸 생각을 많이 한 게 뭐냐면 이걸 환자를 위해서 쓰라는 말인지, 선생님들이나 교수님한테 바라는 것을 쓰라는 건지, 아니면 뭘 쓰라는 건지 정확하게 잘 몰랐죠.”(참여자 6)
좁은 지면을 이용해서 몇 문장 안쪽으로 마음을 표현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참여자 7이 중환자실 일기에 기록한 내용은 “의료진에게 감사하다”는 한 두 문장으로 편안하게 읽히는 글이었는데, 실상 그 짧은 글조차 어려운 창작의 시간을 거친 결과물이었음이 면담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 일기란 게 어떻게 보면, 제가 몇 줄, 딱히 쓸 말이 없고 인제, 제가 거기다 뭘 첨삭을 하고 추가로 쓰기에는. (중략) 괜히 이것까지. 창작의 고통이라고. 여기까지 와서 내가 이 중환자실에서. 왜 그런. 솔직히 그런 건 좀 있더라고요. 나 혼자서 많은 생각도 들고.”(참여자 7)
때로 환자에게 균이 검출되어 격리실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방 안 “그 자리에 서서” 써야 했기 때문에, 짧은 글을 작성하는 일이라도 가족에게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종종 일기를 쓰도록 권유하는 담당간호사에게 가족들이 “써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써드리겠다”는 표현은 가족이 일기의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면서 담당 간호사로 하여금 가족이 일기 쓰기를 거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였다.

5) 주제 5. 내 물건

일기는 점차 가족의 것이 되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기에 익숙해진 가족은 “습관적으로” 일기를 자주 찾아보게 되었고 편하게 쓰게 되었다. 참여자 2는 여유를 가지고 일기를 쓸 수 있었는데, 중환자실이 익숙할 만큼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들의 상태가 안정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기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적고 싶을 때마다 적었다. 일기는 편한 장소에서 썼다. “기다리면서 시간이 많으니까” 마음만 있다면 쓸 수 있었다. 가족은 면회를 시작하면서 “일기장을 먼저” 보았다. 의료진의 작성 내용이 가끔 안 써져 있을 때는 서운하기도 하였다.
“못쓰면 못 쓰는 대로, 잘 쓰면 잘 쓰는 대로, 그냥 쓰는 거지 뭐”(참여자 2)
“저녁에 인제 어떤 때는, 못쓸 때는 가져와 가지고, 잠자기 전에 돋보기 끼고 돗자리 깔아 놓잖아요. 거기서 누워서 쓸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냥 소파 위에 따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잠깐 올려 놓고 쓸 때도 있고. 인제 아침에 갖고 와서. 이렇게 쓰고. 밤간호사들이 대부분 일기를 쓰잖아요. 그니까 그 시간에는 갖다 놓지. 왜 그러냐면 제가 일기를 그 다음날 봐야 되기 때문에 (중략) 저희도 습관이 됐어. 그게.” (참여자 6)
가족은 환자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기를 보고 쓸 수 있었고,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때”에 더 쉽게 쓸 수 있었다. 가족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짧게 글로 표현해 냈다. “막 감정이 격해져서”, “말을 막 하고 싶어서”, “갑자기 문득”, “순간순간 떠 올라서”, “두서없이” 쓰여진 그 글들은 준비가 되어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된 현재의 모습이었고 자신의 모습이었다.
“약간 희망적일 때 쓰는 거 같애. 절망적일 때 보다. (중략) 남들이 보기에는 차도가 없는데, 내가 보기엔 좋아질 때는 쓰는 거예요. (중략) 그걸 쓰면 더 좋아질 거 같고.” (참여자 8)
“제가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우리 아저씨도 힘든데, 딱 보니까 마음이 복받쳐서 내 얘길 막~쓰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어떻게 썼나. 그 생각을 내가 왜 하고 썼나’ 이럴 정도로~, 쓰고 내가 다시 봐요. 쓰고 다시. 인제 내기 전에 다시 보믄 ‘어, 내가 이, 이런 마음을 다 썼네?’ 계획도 없이 그냥 딱 보고, 그냥 쓴 거예요. 그 자리에서. ‘아. 내가 내 저기를 다 토를… 토해냈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 (허허허)”(참여자 1)
반대로 환자 상태가 나쁜 경우나 나쁘게 느껴질 때 가족은 일기를 쓸 수가 없었는데 이때 중환자실 일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두 번의 수술을 받고 돌아가실 것을 예상한 참여자 3은 일기쓰기에 동의를 했지만 쓸 수는 없었다. “시도는 해 봤지만”, “남기고는 싶지만”, “쓴 것을 보지도 못하는” 환자를 생각하면 가족은 일기를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마음이 아파서” 쓰지 못했다. 환자 상태가 나빠져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느낄 때는 마음만이 문제가 아니라 “손이 떨려서” 쓸 수가 없었다.
“할 말도 많고 미안한 말도 많고. 미안한 말이 더 많죠. 어떻게 살아 가야겠다는 말도 많고. 그런 게 많이 있더라고요. 그냥 저기, 이제 복도 나오면서 편지 같은 거를 쓰고는 싶더라고요. 근데 다 그것이 얼마나 뭐, 아버지가 보지도 못하고 이런 걸. 쩝… 남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너무 빨리 놓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인자 마음이 아프죠, 마음이. 쓸 때 솔직히 마음이 아파서 못쓰지요.” (참여자 3)
“쓰려고 하는데 손이 정말 너무 덜덜덜 떨리니까 그냥 못쓰고 덮는 거죠. 응~, 뭐를 먼저 써. 뭐,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쓸 수는 없잖아.(웃음) ..절망적일 때는 안 써요.” (참여자 8)
한편 의료진과 환자, 가족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에도 가족에게 일기는 다시 ‘무용지물’이 되었다. 장 천공 후 패혈증에 의한 다장기부전으로 치료 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참여자 6이 잘 써오던 일기를 한동안 공백으로 두었던 이유는 그 공백의 기간이 중환자실에 대한 믿음이 깨진 “참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온 얼굴에 땀이, 머리가 흥건히 젖고 땀도 범벅이야. 그걸 본 그 순간에 중환자실에 대한 믿음이 딱 깨진 거야. ‘환자가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데… 세상에 환자를 이렇게 놔 두고 어쩜 이럴 수가 있어’. …그 다음부터 중환자실에 대한 믿음이 안 생겨. 막. ‘이 밤중에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오늘도 땅을 치면서 땀을 쭉쭉 흘리고 있을까, 힘들어 하고 있을까’ 며칠째 그랬어. 근데 차마 그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 그런 이야기를 진짜 쓰고 싶었어 사실은, 근데 못 썼어. 그 때는. 아유.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나가가꼬 중환자실 안이 요럭하더라. 어디 말을 할 수도 없고. 한 번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해서도 안되고”(참여자 6)
중환자실이 매번 좋은 상황만 연출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중환자실 대기실은 참여자 6에게 ‘환자가 좋아져도 선뜻 좋아졌다고 표현을 못하는 장소’였다. 참여자 6의 어머니는 “자식들도 살아야 되는데 결정을 못 내리고 저러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주변에서는 “중환자실에 오래 놔두면 치료하는 줄 아냐, 그거 다 테스트하는 거라”며 자꾸 포기를 부추겼다. 참여자 6은 어머니와 친지의 이러한 시선들을 감내하면서, 환자 상태에 따라 의료진을 탓하고 원망하는 대기실 가족을 숱하게 겪어내야 했다. 참여자 6에게는 불신의 세계인 대기실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인 중환자실 일기의 세계가 서로 대립하면서 공존하였다. 여러 모로 애써주는 의료진에게 감사했지만 중환자실 일기 때문에 의료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참여자 6은 이러한 의료진들에 대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간혹 나름대로는 중환자실 일기에 “서운한 일을 써 놓고 소심하게 걱정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실망의 날들을 극복해 갔다. 가족으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웃고 매달리고 사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참여자 6은 일기를 쓰며, 또 쓰지 못하는 시간을 인내하며 “그 기다림”의 시간들을 지냈다.

6) 주제 6. 기억의 물건

중환자실 치료가 끝나고 일반 병실로 옮겨 간 후 중환자실 일기는 가족에게 ‘기억의 물건’이 되었다. 일기가 소중하게 생각된 가족은 집에 가서 꺼내 보기 위해, 또는 돌아가셔도 볼만 하도록 일기를 잘 보관해 두었다. 어떤 가족은 병실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일기를 발견하고 중환자실을 떠올렸다.
“절대 안 버리죠. 내가 우리 아저씨 인제 집에 가면 ‘이랬어’ 그러고 보여주려고. 기념일 거는 없지만 그래도 증거로. ‘당신 위한 거. 이렇게 살았어. 이렇게 힘든 생활도 했다’고. ‘간호선생님이 이랬고 나도 이래서 이런 사진도 찍어서 붙여 주시고’ … 그 이야기하려고 잘 간직하고 있죠.” (참여자 1)
“잠이 안 와서 한 번. 밤에. (중략) 생각이 나서가 아니고 인제 짐 정리하면서, (중략) 그 사진하고 보면서. 아버지가 상태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딛고 일어난 아버지가 정말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거기 근무하던 교수님들, 선생님들이 대단해 보이고 고맙고.” (참여자 6)
그러나 이와 같이 중환자실 일기를 잘 간직한 가족이 있는 반면 다수의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쉽게 버리기도 했는데, 딸의 짐보따리에 따라가면서 분실되거나(참여자 9), 교통사고로 치료 중인 아버지에게 상태변화가 없어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내용으로 작성된 일기에 대해 “내가 엄마라도 잘 안 볼” 것으로(참여자 4) 생각하기도 했다.

3. 중환자실 일기의 의미

가족에게 중환자실 일기는 세 개의 의미로 정리되었다. 첫째는 “소통”의 의미로서 일기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황과 심경을 서로 알게 하였다. 둘째는 “위로와 희망”의 의미로서 가족은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기록”의 의미로서 가족은 자신과 환자, 의료진이 함께 한 중환자실에서의 삶을 일기에 남길 수 있었다(Table 3).

1) 주제 1. 소통

일기를 통해 환자, 가족, 의료진은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여기서 소통은 정보 전달과 마음을 나누는 것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가족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환자의 특성을 일기에 적었다. 이것은 환자의 단절된 역사를 연결하는 일이었고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참여자 6은 의료진들이 환자의 특성을 “그만큼만 알아도 손길 가는 것도 틀리고, 마음 가는 것도 틀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의료진은 환자의 특성을 더 이해하고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가족에게 ‘오늘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와 환자가 겪은 검사와 치료 내용에 대해 일기에 써서 전달하였다. 가족은 “말로는 다 전달받을 수 없는” 정보들을 일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일기는 가족에게 “의료 지식이 없어서 반은 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환자의 상태를 “편안하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일기의 정보는 접근이 용이 했고, 면회시간 “바쁠 때 미처 못 들어온” 의료진을 일기로 대신하기도 했다.
“일기장 하나에서 이 환자가 다 들여다 보이잖아요. 우리가 초등학교를 애기들을 보내 보면 선생님이 서른 몇 명이다 하면 앞에서 보면 가정환경이 다 보이듯이. 환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중략) 그래서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낳아서, 시골에서… 자서전 아닌 자서전을 쓴 거죠. 그 부분을 그렇게 전달한 거 같애.”(참여자 6)
“물어보기 전에는 디테일하게 현재 산소가 몇에서 몇으로 줄었고 이렇게 설명을 해 주시지는 않죠. (중략) 오늘의 목표 해가지고 그저께는 숙면이었고 어제는 산소 줄이기. 이렇게 적어져 있는데, 그거에 해당되는 코멘트가 간단하게 달려 있으니까”(참여자 7)
“이게 없었다면? 그러면 이제 간호사님들을 좀 괴롭혔겠죠? 왜냐면 이제 물어봐야 되니까 자꾸. (중략) 많이 안 바쁠 때는 제가 들어가면 바로 담당 간호사님 오셔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두 번 정도는 갑자기 환자들이 몰려 들어가지고.” (참여자 10)
매일 기록된 일기 내용은 가족 간의 정보 차이를 줄이기도 하였다. 주 보호자와 다른 가족들은 일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에 대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참여자 8은 정보를 전달하는 이러한 일기의 역할을 두고 “일기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가족들은 일기를 통해 그들의 심경을 의료진과 환자에게 전달하였고, 일기를 통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마음 또한 볼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이걸 보면 내 동생이 이야기하는 거랑 또 틀리게. 선생님이 쓴 게 내게 와 닿는 게, 우리는 좋아지고 나빠지고 차이를 엄청 자세히 아는데. 걔(동생)는 한 번 본 거, 며칠 있다 본 거니까. 물을 때는 답답했는데. 이런 걸 읽으면 ‘이땐 이랬구나’ 생각이 들죠.” (참여자 8)
“선생님들이 시간이 없어서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고 쓰지는 못했지만, 오늘 이 환자가 이러 했었고 오늘은 이렇게 잠을 잘 잤다. 오늘은 이렇게 웃어 주었다. 그것도 그 선생님의 잠깐 잠깐의 힐링이잖아요.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눈맞춤을 하면 웃어 주시고 그런대요. 근데 그런 말 한마디가 하루의 피로를 싹 녹이는 말이잖아요”(참여자 6)
가족이 환자나 의료진과 정보와 마음을 나누는 데 있어 일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무는 장점이 있었다. 참여자 10은 직장을 다니며 중환자실의 어머니를 돌본다. 중환자실 일기에 남긴 내용은 지금이 아닌 나중에 어머니가 회복 후 들었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대면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맞지 않아도” 참여자 10은 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었다. 불규칙하게 면회를 오는 가족이 남긴 일기를 통해 의료진은 한결같이 회복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굳이 대면을 안 해도. (중략) 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괜찮을 것 같아요. (중략) 보호자, 환자, 의료진들까지 포함이니까. 왜냐하면 셋이 같이 쓰는 개념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거든요. 뭐 일단 말로 하지 못해도 글로 어느 정도는 다 전달이 되니까.” (참여자 10)

2) 주제 2. 위로와 희망

일기는 가족의 세계 내에 의료진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였다. 일기를 읽으며 가족은 의료진의 존재를 인식하였고 그 존재에 대해 “감사”와 “희망”을 느끼고 동력을 얻었다.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의 편에서 “보살펴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가족처럼 빈자리를 메꾸고”, “배려하고”, “눈여겨보고”,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 씀으로써”, “안심”과 “편안”을 제공하고 있었다. 평소 이 점은 가족들에게 “알 길이 없는 것”이었으나 일기를 통해서 가족은 의료진들의 “정성”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선생님들은 너무 감사하지만 환자보호자는 많이 외롭거든요. 선생님들은 보살펴주는 사람,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어렵고. 근데 저거를 읽어보면 선생님들도 형식적인 게 아니라. 이렇게 진짜 생각도 해 주시는구나. 그런 거를 못 느껴서가 아니라 마음을 모르니까. 근데 표현이 되잖아요. 부부도 그렇잖아요. 깊은 속내를. 되게 많이 지쳐 있는데, 이걸 보니까 진짜 힘이 났어요.” (참여자 5)
“내가 몰랐던 거를 알았지. 선생님들 쓴 거 보고. (중략) 그냥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마음적으로래도 안쓰럽고 ‘이 고통스러운 걸 좀 어떻게든, 내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잘 보살펴 줘야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거를 알았지. 그걸(일기를) 봄으로써. 우리는 사실 잘 모르지. 저 선생님이 우리 아저씨 상태를 알고 퇴근을 했나.(웃음).. 관찰을 한 거잖아. 우리 아저씨가 이랬는데 다음에는 좀 더 좋아지고~ 뭐, 오늘은 뭐하느라고 많이 힘들으셨다고 막 그래니까… 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구나.” (참여자 1)
가족은 “이 사람 하나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까지”하는 의료진을 믿을 수 있었고, 그런 의료진이 “이 사람을 돌보고 있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에 대한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의료진이 써 놓은 “긍정”의 메시지는 “환자와 가족에게 좋은 에너지”가 되었으며,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통해 의료진을 함께 하는 동지로 느끼게 되면서 의료진의 존재는 가족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엄청 희망적이거든요. 우리에게는 날아갈 정도로 희망이예요. 일주일 정도 에너지가 버티는 거 같아요. (중략) 그것도 치유거든요. 간호사 선생님이 한마디 좋은 말 하는게, 막 소름 끼치고 그런 게 있어요. 뭐, 왜냐면 우리는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전문적인 사람이 ‘엄마가 이게 좋아졌어요’ 하는데 (중략) 그게 하늘과 땅 차이예요.” (참여자 8)

3) 주제 3. 삶의 기록

일기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가족과 환자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기록이었다. 가족은 일기에 ‘환자에게 보내는 사랑과 믿음, 고마움을 전하는 말’, ‘간병하면서 힘든 점’,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절망과 희망의 심경’을 남겼고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믿음’, ‘운동을 할 수 있는 옆 환자에 대한 부러움’ 등 중환자실에서의 삶이 그대로 기록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좋아졌을 때, 정말, 병원에서 나갔을 때, 본인은 지금 의식이 없지만 (중략) 그러면 집에 가서 혼자 읽어 보시면, ‘아! 내가 이렇게 해서 이런 과정을 거쳤구나.’ (중략) 일기장은 추억도 되고, 아버지한테 할 말도 쓰고. 남겨 놓으면 그것이 기록도 되고.”(참여자 6)

논 의

가족의 중환자실 일기 체험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본 결과, 중환자실 일기 체험 과정에서는 중환자실 일기라는 도구(lived thing)가 시간에 따라 변모하면서 가족을 만나 돕고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중환자실 일기 체험의 의미 분석을 통해서는 중환자실 일기가 그 존재 방식을 통해 의료진-환자-가족을 가깝게 연결시키는 관계성(lived others)으로 현상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나타난 몇 가지 시사점을 간호의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간호는 다른 사람과의 유기체적인 의존성과 적응과정을 지지하고 중재하는 것으로서 모든 고유한 개인은 특별히 그를 위해 고안된 기능, 기술,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22]. 중환자실 일기를 소개받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은 호의를 가졌지만 본 연구의 바깥에 있던 거절한 가족에게 일기 쓰기란 좋은 생각이 아니었고, 간혹 어떤 가족은 나쁜 소식을 준비하라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또한 중환자실 일기를 잘 작성하는 가족이 있었지만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 있었다.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라 일기는 때때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병실로 간 이후 일기는 잘 보관되거나 쉽게 버려지기도 했다. 중환자실 일기의 효과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이 되었다고 해도 모든 가족에게 일기가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환자실 일기를 이용하는 환자와 가족의 개별적 의사와 개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 중환자실 일기를 쓰는 가족들은 각 시기에 맞는 적절한 간호 접근이 필요하다. 가족에게 중환자실 일기라는 도구는 ‘좋은 생각 - 없는 물건 - 감동적인 서비스 - 부담스러운 일거리 - 내 물건 - 기억의 물건’으로 시시각각 변모하면서 드러나기도 은폐되기도 하였다. 중환자실 일기를 처음 설명할 때는 오해가 없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고, 가족 작성란이 비어있는 것을 볼 때 간호사는 그 이유를 고민하고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에 가족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부담을 느끼고 있어 쓰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잘 쓰고 있던 일기라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때에는 쓸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일기의 위치도 중요하다. 본문에서 참여자 5가 지적하듯 가족에게 중환자실 일기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쉽게 볼 수 없었고, 보였더라도 너무 먼 데 위치하고 있었다. 중환자실 일기가 놓인 곳이 가족의 자리가 아닌 간호사의 자리이기에 접근이 어렵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와 인식하는 거리는 다르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가장 가까운 것’의 뜻은 우리로부터 거리 상 ‘가장 짧은 거리’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23]. 작성 공간이 비어있는 중환자실 일기는 그 침묵을 통해 세심한 간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보이고 있다.
셋째, 정체성 보호의 중요성과 그 실천적 방법에 대한 발견이다. 간호실무에 있어 환자는 자기 삶을 지닌 존재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자기 정체성의 보호는 그의 삶을 함께했던 친구나 가족을 통해 엮어진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능하다[24]. 중환자실 일기에 환자에 대한 소개를 쓰는 것을 통해 가족은 환자의 역사성을 증명하고, 단절된 환자의 이야기를 대신 이어가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찾게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아(自我)란 곧 기억이다[25].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에 가족이 생각하는 환자의 평소 모습과 함께 자신들의 사랑과 소망을 작성하여 남겼는데, 이것은 사랑과 소망이 새로 생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 보여진 것이다. 글쓰기를 치유라고 한 Cameron [26]은 ‘우리가 쓰려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진짜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종이 위에 내려 놓으면 된다’고 하였다. 중환자실 일기에서 보이는 건강했던 환자의 모습과 가족의 회복을 기원하는 메시지는 현재로만 인식되던 환자를 과거와 미래의 모습까지 연결함으로써 돌봄 제공자들에게 온전한 주체로 환자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중환자실 일기의 긍정적인 면은 외국의 것과 유사하였다. 중환자실 일기를 통해 가족들은 의료 정보에 대해 쉽게 접근하고, 쉽게 이해하며, 그 정보를 다른 가족 구성원과 공유하고,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존재를 인지하며, 사랑과 애정을 표현함으로써 환자와의 관계에서 희망을 유지하게 되었다[27]. 중환자실 일기는 중환자실에서 가족의 존재를 좀더 잘 인지하게 하고, 의사 결정을 지원하며, 의료 팀과의 의사소통을 강화하였다[28].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중환자실 일기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면은 보기 어려웠다.
일기와 관련된 부정적 측면으로 외국 사례에서는 가족들에게 누가 작성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으며[29], 모든 참여자가 일기를 유익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는[30] 보고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일기 작성과 관련해서 가족에게 개인적 부담을 가지는 정도는 있었지만 작성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잘 볼 수 없었다. 중환자실 일기가 병원의 재산도 환자의 재산도 아닌 모호한 문서라는 점이 법적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고[31], 환자는 그 내용에 대해 고통스럽고 감정적으로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32] 지적이 있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법이나 윤리적인 갈등이 확연히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일기의 작성이 강제가 아닌 자율적 의사에 따르고 있다는 점,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는 가족이나 의료진 모두 일기를 아예 작성을 하지 못해 일기는 ‘무용지물’의 상태로 머무른 점 때문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치료결과가 나쁠 때나 작성 기간의 짧은 경우 등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작성한 일기를 가져가기를 거절하는 것을 임상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일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내에서의 체험에 국한 되었으므로 참여자 및 장소적인 제한이 있었다는 점과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계속 면담이 진행될 수 없었던 한계점이 있다.

결 론

중환자실에서 환자-가족 중심 간호의 일환으로 제공되고 있는 중환자실 일기에 대한 가족의 체험 과정과 일기의 의미를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알아본 결과, 중환자 가족은 중환자실 일기를 시간에 따라 좋은 생각, 없는 물건, 감동적인 서비스, 부담스러운 일거리, 내 물건, 기억의 물건의 6가지의 모습으로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 의미는 소통, 위로와 희망, 삶의 기록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중환자실 일기는 중환자실에서 의료진과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돕고, 관계를 촉진함으로써 중환자실 치료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위축된 가족의 역할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간호 중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중환자실에서 가족의 어려움을 감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환자실 일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가족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강제적인 적용이 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참여 후에는 시기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를 살피는 사려 깊은 지지 간호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입원 생활 기간 동안의 체험에 집중한 것으로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후속 연구를 제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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